2023년 군인월급 및 군인 월급 바뀌는 내용(인상안 : 당직수당, 활동비, 수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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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월급이 또한번 급격하게 오를 예정입니다. 2023년에도 군인월급이 급하게 향상될 예정입니다. 이제 막 입대하는 분들에게는 한줄기 희망이기고 하고 일부는 군대가아닌 캠프라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2023년도에는 병장 100만원, 2024년은 150만원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세히 소개드리겠습니다.  기존 2022년까지의 군인 월급 변천사는 이전글(링크클릭)을 참고 하시면 좋습니다.  2023년 군인월급 인상안이 예정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병의 월급이 51만원에서 75만원으로, 일병의 월급은 55만원에서 86만원으로, 상병의 월급은 61만원에서 90만원으로, 병장의 월급은 67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오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너무 과한거 아니냐 라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도 너무 적다, 최저임금도 안된다 라는 이야기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위의 사진이 2023년에 실제 오른 군인 병사 급여인데요 이병은 60만원 병장은 100만원 받는게 결정되었습니다. 실로 파격적인 인상인거 같습니다. 25년까지는 점차 150만원까지 올린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2023년 군인월급 외에도 달라지는 사항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여러가지 처우개선이 좋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당직근무비가 상승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군인은 특성상 24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별한 수당이 없이 근무를 시행하다가 당직근무비가 신설 되었었는데 그게 평일 1만원, 휴일 2만원으로 전혀 현실성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에 조금 향상되어서 조금이나마 처우개선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평일 : 1만원->3만원   -휴일 : 2만원->6만원    ※ 27년부터 8만원 인상 추진 중 두번째로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시간이 향상됩니다. 기존에 28시간만 지급되다가 한시적으로 22년에 45시간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는데요. 23년에는 45시간으로

알아두면 유용한 자동차 계기판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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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사람들이 차량을 구입하면서 두꺼운 차량설명서를 정독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운행하다가 한번씩 만나게 되는 차량의 경고등이 들어고에 되면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유등이 아닌 다른 경고등이 켜지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해서 무조건 운행을 중지하고 보험회사 호출을 하거나 가까운 카센터로 방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알아두면 유용한 주요 자동차 계기판 경고등 에 대해서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1. 전면 안개등  /  2. 파워 스티어링 경고등 3. 후면 안개등  /  4. 워셔 액 부족 5. 브레이크 패드 경고  /  6. 정속 주행 켜짐 7. 방향 지시등  /  8. 빗방울, 빛 감지 9. 동절기 모드  /  10. 정보 표시 장치 11. 예열 플러스 / 디젤 예열 경고 12. 서리 주의   /  13. 점화스위치 경고 14. 차내 열쇠 없음  /  15. 전자 열쇠 배터리 부족 16. 차간 거리 경보 장치   /  17. 클러치 페달 밟기 18. 브레이크 페달 밟기  /  19. 스티어링 잠금장치 20. 전조등 21. 타이어 압력 부족   /  22. 차포등 정보 23. 외부 경관등 결함  /  24. 브레이크 등 경보 25. 디젤 배기가스 후처리 장치 경보 26. 트레일러 견인장치 27. 공기 현가 장치 경고 28. 차선 이탈  /  29. 촉매 변환 장치 경고 30. 안전벨트 미착용 31. 주차 브레이크 등  /  32. 배터리 경고 33. 주차 보조장치  /  34. 오일교환 등 서비스 요망 35. 자동 전조등  /  36. 전조등 범위 조정기 37. 후방 스포일러 경고  /  38. 컨버터블 천장 경고 39. 에어백 경고  /  40. 핸드 브레이크 경고 41 연료필터에 물 있음   /  42. 에어백 비활성화 43. 결합 문제  /  44. 전조등 하향 45. 에어 필터 더러움  /  46. 경제운전 지시기 47. 내리막길 주행 제어 장치  /  48. 온도 주의 49. ABS 잠김

안전불감증이 부른 2015년 2월 11일 영종대고 106중 추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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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불감증 2015년 2월 11일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영종대교 구간 서울방면도로에서 106대의 차량이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3명이 사망하고 130여 명이 부상했으며 13억 2천여만 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사고가 발생한 오전 9시 39분경에는 짙은 해무가 시야를 방해하여 시정거리가 10m에 불과 했다. 당시 운전자의 진술에 따르면 영종대교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바로 앞 차량의 비상등 불빛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달리는 많은 차량들은 위험을 간과하고 안전거리도 확보하지 않은 채 질주를 계속 함으로써 엄청난 사고를 발생시켰다.  환경적 차원에서도 사고가 발생한 영종대교를 건설하기 전부터 지역 특성상 해무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교통사고 우려가 크다는 지적 이 있었으나 사고 당시까지도 기상관측시설이 설치되지 않아 정확한 가시거리 측정이 불가능했다. 거기에 더해 저시정 경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현장을 통제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관리기관의 미흡한 대응도 사고를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는 9년 전 짙은 안개로 인해 11명의 사망자를 낸 서해대교 29중 추돌사고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안전불감증과 안이한 대처가 불러온 안타까운 사고 였다. 입춘을 넘기며 기온의 편차와 환경변화가 커지는 환절기의 초입 이 되었다. 겨울의 시작점 에서 동계작전을 준비하며 강조되었던 여러 안전 조치와 요인들이 조금씩 느슨해질 우려가 있는 시기다. 과거 이 시기 발생했던 사건 ·사고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안전불감증에 빠지지 않고 여러 위험한 상황속에서 나와 가정,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사전 예측과 한 템포 빠른 대처라 는 사실을 기억하고 항상 사고예방에 노력해야 한다.

1952년 2월 6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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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1952년 2월 6일,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 하였다.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태어난 이왕은 2020년 영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군주이자 가장 긴 재위 기간 을 가지고 있다. 1939년, 엘리자베스 2세가 열세 살이 되던 해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프랑스 전역을 석권한 나치 독일은 막대한 공군력을 투입하여 영국을 위협했지만,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은 어린 엘리자베스 2세를 국외로 피난시키지 않고 끝까지 남게 함으로써 왕실의 모범을 보였다.  어머니의 이러한 결단과 언행을 보고 자란 엘리자베스 2세 역시 18살이 되면서부터 아버지(조지 6세)에게 군에 입대 해 최전선에서 싸울 기회를 달라고 고집을부렸고 우여곡절 끝에 소위 계급으로 참전하여 군수품 운반 트럭을 모는 임무 를 맡게 된다. 그녀는 다른 장병들과 똑같은 군복을 입고 무거운 탄약을 날랐으며, 차가 고장 나면 먼지와 기름때를 뒤집어쓰고 차량을 수리했다. 이로써 영국 왕실이 참전을 통해 국가에 봉사해온 역사 는 조지 6세(제1차 세계대전, 해군)로부터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었고, 장남인 찰스 왕세자(해군 장교), 둘째 앤드루 왕자(헬기 조종사), 셋째 에드워드(해병대 장교), 그리고 그의 손자 윌리엄(헬기 조종사)과 해리 왕자(아프간 파병, 전투소대장)가 왕실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그리고 영국은 왕실을 중심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 속에서도 굳건히 나라를 보전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들에게 '마음의 여왕'(Queen of Heart) 이 될 수 있었다. 영국은 일찍이 1625년 청교도 혁명을 통해 찰스 1세를 몰아냈고 명예혁명을 통해서 제임스 2세를 축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영국인들은 왕을 인정하고 그 권위에 대해 존경을 표하고 있다. 장래 여왕의 자리에 오르게 될 후계자가 국난에 맞서 자발적으로 국가 에 헌신하고자 했던 마음 이 국민의 마음에 닿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아들딸 사칭하는 엄마 대상 팀뷰어 보이스피싱 카톡, 문자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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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제상황도 좋지않다보니 소액사기를 노리는 불특정 다수 대상 신종 보이스피싱 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도 최근에 연락받아봐서 여차하면 속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절대 당하지 마시라고   보이스 피싱 예방을 위해 보이스피싱진행 절차 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예전 보이스 피싱은 개인정보를 어느정도 확보한 상태에서 통장에 잔금을 발송하게 하거나 서류를 제출하게 하는 복잡하지만 큰 금액을 노리는 보이스 피싱이 한참 유행을 했다면 최근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소액사기 및 보이스 피싱 이 번지는듯 합니다. 이러한 상황은 최근에는 모바일기기 특히 휴대폰으로 폰뱅킹, 결제 등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을 악용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보이스 피싱은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하나를 발송 하면서 시작하게 되는데 보이스 피싱이 어떻게 시작하게 되는지 아래 내용을 잘 확인해 주세요 잘못하면 당신도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소액 보이스피싱은 엄마라고 부르는 아들딸의 문자로 시작합니다. 휴대폰을 놓고 왓다거나 휴대폰을 수리하고 있어서 연락이 안되거나 그래서 심지어 엄마, 아빠의 휴대폰 번호도 잘 기억못한다고  문자롤 보내고 시작을 합니다. 저야 아들, 딸이 아직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문자를 보자마자 이건 사기구나하고 느꼈지만 초중고 아이들이 있는 엄마, 아빠라면 잘못하면 혹할 수 있습니다. 이런 특징이 예전의 개인정보를 다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하는 보이스 피싱과 다른 점입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관련 문자를 랜덤하게 뿌린 후 관련 있는 인원이 답장을 보내면 반응하여 소액결제, 인증, 이체 등을 유도하는 신종 보이스 피싱기법 입니다.  시작 패턴입니다. 보통 아빠보다는 엄마를 찾는 문자가 많이 있고,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낮시간에 주로 문자를 발송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상하게 여겨야할 점은 아래사진처럼 문자를 보낸 번호와 카톡을 요청하는 번호가

1986년 1월 28일 챌린저호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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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저호 1986년 1월 28일,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대를 떠난 지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 했다. 당시 우주 비행사로 선발된 고등학교 교사가 탑승했던 관계로 많은 사람들이 TV로 발사 장면을 시청하고 있었다. 때문에, 챌린저호 폭발 사고의 충격은 실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사고 후 몇 달간에 걸친 사고 조사결과 한파 때문에 보조로켓 구성품 중 연결 부위의 기밀(을 담당하는 고무링(O-ring)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고 그 벌어진 틈 사이로 새어나간 화염이 우주왕복선 폭발로 이어졌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일차적인 사고조사 이후 밝혀진 사고가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기막힌 것이었다.  온도 저하에따라 고무링이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점 에 대해서 엔지니어들이 꾸준히 이의를 제기했음에도 최종 의사결정 과정에서 관련위험이 무시된 것이다. 실제 챌린저호 발사 당일 플로리다는 영하 2℃의 한파가 몰아쳤고 경험 많은 엔지니 어들은 이 정도 온도에서 고무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NASA관계자들에게 경고를 보냈다. 그러나 미션 책임자들은 오히려 발사용 로켓 외벽에 보이는 얼음제거에만 신경을 썼고 엔지니어들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자 나중에는 이들을 빼고 최종 발사 협의를 진행해 발사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려 버렸다. 이미 발사가 여러 차례 미루어진 상태여서 더 이상 발사를 미루는 것이 곤란하다는 이유 였다. 챌린저호는 재활용 가능한 획기적인 우주선으로 이미 25번째 미션을 수행 중이었고 그들은 작은 고무부품 하나가 거대한 우주선을 날려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챌린저호 사고는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 였다. 주어진 목표와 성과에 급급해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귀담아듣지도 충분히 검토하지도 못했다.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은 구성원들과 제대로 소통되고 있는지, 또그러한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환경 속에 놓여 있는지 챌린저호의 사고를 거울삼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기는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플란트 시술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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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플란트 시술과정을 보여주는 움짤입니다.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합니다. 그럼 임플란트 시술 과정을 움짤로 확인하실 수 있씁니다. 임플란트 치과에 따라서 재료에 따라서 달라 질수 있으니 필요하신경우 잘 확인하시고 건강한 이를 다시 찾으시기 바랍니다.  생활의 지혜 목록으로 돌아가기  

3단뛰기 세계 신기록은 18.29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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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3단뛰기 세계신기록 이 인터넷에서 화제입니다. 아직도 1995년(1995.08.07.) 스웨덴의 예테보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나온 영국의 조나단 에드워즈선수의 18.29m가 현재 삼단뛰기 세계신기록입니다. 움짤을 보고 있으면 무협지에서 나오는 경공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 뛰는 모습을 보면 한걸음에 거의 6미터를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약장면 보시지요 정말 역동적입니다. 뭔가 속이 시원시원하게 달리고, 뛰는게 아니리 정말 공중에서 날아다니는거 같습니다. 도약하는 부분부터 정말 업청납니다. 24년동안 깨지지 않은 신기록 이라니 정말 엄청난 선수임에 틀림없습니다. 도약부터 뛰끼까지 움짤로 보시면 정말 엄청납니다. 그다음 삼단뛰기 신기록은 언제 어떻게 나오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1923년 1월 22일, 의열단 단원 독립운동가 김상옥 선생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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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김상옥 선생 1923년 1월 22일, 의열단 단원 김상옥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열흘 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를 결행한 후 선생은 용산에 있는 매부 고봉근의 집에 몸을 감추었으나 밀고로 인해 은신처가 발각되었고 1월 17일, 무장한 일본 순사 14명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이에 선생은 뛰어난 사격 솜씨와 대범함으로 이들의 추적을 따돌린 후 눈 덮인 남산을 맨발로 넘어 왕십리 인근 이혜수의 집으로 은거지를 옮겼다. 그러나 이마저 일본에 탐지되어 이번에는 4백여 명의 무장경찰이 은신처를 겹겹이 포위 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은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가옥 지붕을 넘나들며 일경과 3시간여의 치열한 접전을 벌여 수 명을 사살하고 다수에게 중상을 입혔지만 안타깝게도 총알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김상옥 선생은 마지막 탄환이 든 권총을 머리에 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 순국 하였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상하이를 떠나 면서 남겼다는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라는 그의 결의를 따랐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의거를 기사에 올리며 “오른손을 이미 못 쓰는 상태에서 죽는 순간까지 둘째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권총을 힘있게 잡고 있었다." 라고 했다. 일본 경찰들은 자결한 김 의사가 혹시 살아 있을까 두려워 감히 다가가지 못했고 김 의사의 어머니를 보내 생사를 확인하게 했다.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할 때 그의 몸에 11발의 총상 이 남아있었다고 하니 10발의 총알을 맞으면서도 수백의 일경에 맞서 세시간을 버틴 김상옥 의사를 초인으로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의 강한 정신력과 결기 넘치는 의거는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되살렸고 이후 펼쳐지는 항일 투쟁의 발판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암살'의 등장인물 '하와

초보운전자가 자동차보험 선택할때 고려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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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임기사 입니다. 오늘은 대리운전 관련이 아닌 처음 자동차보험을 알아볼때 확인해야할 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리운전 첫 글로 가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짜르의 잡동사니' 검색해서 오세요' 1. 자기신체 손해 VS 자동차상해 중 어떤것을 선택할 것인가? 자기신체손해 vs 자동차상해 가능하면 무조건 자동차 상해로 하시는게 좋습니다. 차량사고가 났을때 내가 어떻게 채료받는게 유리한지 확인하고 내치료비를 보장받는 특양인데  자기신체사고는 얼마나 심하게 다쳤냐(상해등급)에 따라 보험금이 정해지기 때문에 내가 낸  낸 병원비만큼을 다 보장못받을수도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동차상해는 상해등급과 상관없이 치 료비 전액,위자료, 휴업손해까지 다 보장되지만 비용은 3~6만원정도 올라가게 됩니다. 어떻게 얼마나 다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정도 투자해서 자동차 상해를 충분히 선택할만 하다고 권장됩니다.  2. 무보험차 상해 특약설정은 높게 선정한다. 무보험 상해 특약 설정은 높게 한다 모든 차량이 보험이랑 잘 가입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교통사고 시 가해차량이 가입한 보험이 아얘 없다거나, 뺑소니를 당했을 경우를 대비해 가입해야하는 특약입니다. 보험사에서의 기본 특약은 2억인데 가급적이면 5억원으로 하는것을 권장합니다.  만약 이런사고로 내가 죽거나, 장애인 식물인간이 되는 상황이 되면 내 인생뿐만아니라 가족인생까지 망치게 되기 때문에 자동차보험에서 이 특약을 높게 하는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최초 보장범위  2억보단 최소 5억으로 늘려서 가입 하는게 권장되며, 차종에 따라서  다르지만 1년 보범료 차이가 몇백원에서 몇천원 차이로 많이 차이도 안나면서  부모,배우자,자녀까지 다 보장되기 때문에 절대 권장하는 특약입니다.  3. 대물가입금액도 10억이상 상향 한다. 자동차 보험 가입시 대

2011년 1월 21일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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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작전 2011년 1월 21일은 대한민국 해군이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의 선원들을 구출한 날이다. 이란의 하르크 섬에서 화물을 싣고 스리랑카로 항해하던 삼호주얼리호는 2011년 1월 15일 인도양 공해상에서 해적들에게 납치되었는데, 당시 배에는 한국인 8명을 포함해 21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삼호주얼리호의 피랍 사실을 인지한 대한민국 해군은 청해부대 최영함을 출동시켰고, 1월 18일 1차 구출 작전을 시도했지만 피해자가 발생할 위험이 높아 작전을 중지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계속해서 배를 쫓아 기회를 엿보던 청해부대는 드디어 1월 21일 5시 29분, '아덴만 여명작전'이라고 명명한 2차 구출작전을 단행 하였다. 탑재된 링스헬기와 최영함의 기관총 사격이 적을 제압하며 시선을 끄는 사이, 선박 침투에 성공한 공격조가 신속히 선실에 돌입해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단 한 명의 작전 요원 손실 없이 피랍된 선원 21명을 구출 하고 삼호주얼리호를 되찾았다. 격실에 숨어있던 잔여 해적까지 모두 소탕한 9시 56분 아덴만 여명작전은 성공적으로 종료 되었다. 위의 기사 사진은 아덴만 여명작전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우리나라 최영함과 작전에 투입된 주요 무기 등에 대해서 보여준다. 아덴만 여명작전은 우리 군이 해외에서 인질로 잡힌 국민을 교전끝에 구출한 최초의 사례 이자 세계적으로도 피랍 상선을 군사작전으로 구출한 다섯 번째 사례였다. 이 작전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무사히 지켜낸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적 쾌거로 평가받고 있다. 머나먼 땅에서 국제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파병부대원들의 변치 않는 활약 을 기대하며 국민들이 원하는 군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수 있는 사건이다. 

재발견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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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하면서, 동료를 만나면서 발생하는 재발견의 즐거움 에 대해서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재발견 : 어떤 사실이나 가치를 다시 새롭게 발견하여 인정함. 재미있게도, 재발견 앞에는 "00인 줄 알았는데~"와 같은 선입견의 말이 자주 와서 붙습니다. 소심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대범하네.", "못하는 줄 알았는데 잘하네." 와 같은 경우지요. 여러분은 동료에 대한 재발견 을 얼마나 자주 하시나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은 첫인상, 패션, 지역, 혈액형, 성별 등 한정된 정보로 매우 쉽게 형성 됩니다. 또한 선입견은 '한번 형성되면 특별한 경험이 있지 않는 한 쉽게 변하지 않고, 특히 부정적인 정보는 더 오랫동안 각인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미 부정적 선입견을 갖고 있는 동료와 파트너가 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무례한 말과 행동으로 표출이 될 것이고, 그 동료는 당신이 이유도 없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동료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재발견의 노력을 시도 해야 합니다. 1. 당신의 동료를 어떤 배경에서 만나고 있습니까? 항상 같은 사무실,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보고 있습니까? 카페, 식사자리 등 배경을 바꿈으로써 동료의 다른 모습을 발견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2. 모두가 성장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동료는' 시간이 지나면서 혼나고 스스로 반성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강렬하게 남은 첫 모습이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이 아닐 확률이 더 높습니다. 3. 당신도 변했습니다. '세상이 늘 그렇지.', '요즘 애들이 다 그렇지' 원래 그렇다고 포기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재발견의 순간은 없을 겁니다. 재발견은 당신의 프레임을 바꾸면서부터 시작합니다.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재발견의 즐거움이 있는 살아있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궁금한 사항이나,  잘못된 내용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생활의 지혜 목

겨울철 저온화상 예방방법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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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는 여러가지 난방기구의 사용이 늘어나게 됩니다. 저온화상은 40~50℃ 정도의 낮은 온도에 두시간 이상 피부가 노출되어 입게되는 화상 을 말하는데요.  겨울철 온열기구나 핫팩을 피부에 직접 닿은 채 사용하거나 노트북을 다리위에 올려놓고 장시간 사용 등 대부분 온열기구에 의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의 피부는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48℃의 온도에는 5분, 50℃는 3분, 60°℃이상에서는 8초만 노출되어도 단백질이 파괴 되면서 변형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온화상은 좁은 면적에 깊은 3도 화상이며 피부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피부의 표피와 진피층이 화상을 입기 때문에 치료가 힘들어 주의해야 합니다.  발생 직후에는 통증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후 열이 오르는 느낌과 따끔거리며 피부가 붉게 변하며 증상이 심해지면 통증과 심한 화끈거림이 동반됩니다. 증상 발현시 2시간 이내에 찬물이나 생리식염수로 저온화상 부위를 식혀주고 화상 연고, 습윤밴드로 가벼운 화상처치를 하고 가려움의 정도가 심하거나 물집이 올라왔다면 절대 긁지말고 곧바로 병원 진료 를 받아야 합니다. 온열기구를 구입할 땐 안전인증 KC마크가 부착된 제품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KC마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법으로 정한 특정 제품을 유통· 판매할 경우 반드시 제품에 표시되어야 하는 마크이며 안심하고 기기, 전기장판 사용시에도 피부에 바로 닿지 않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핫팩, 노트북 등으로 인한 전자 저온화상 예방방법 5가지를 말씀드리면 1. 안전인증을 받은 핫팻, 온열기구 사용하기 2. 핫팻 사용 시 피부에 직접 닿지 않게 하기 3. 온열기구와 적 당한 거리 두기 4. 온수 및 전기매트 사용 시 이불 깔고 사용하기 5. 온열기구를 수면 중 사용시에는 온도를 낮게 조절하기 위의 다섯 가지는 꼭 지켜주시고, 올바른 온열기구 사용으로 저온화상을 예방하고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 되세요 다른 궁금한 사항이나,  잘못된 내용은 댓글 부탁드립니다.

우리아기 올바른 훈육방법 5가지와 육아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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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를 하는데 누구도 처음부터 능숙할 수는 없습니다. 처음 접하는 아기는 내맘대로 되지 않고 엄마, 아빠 모두 심신이 지쳐 있는게 당연합니다. 이럴때 육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아기를 즐겁게 돌보는 것' 입니다. 아이가 계속 울때 엄마는 답답하고 화가 날 수 있지만, 모든 아기는 웁니다. 슬퍼도, 기뻐도, 배고파도 울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구요? 아직 우는것 외에는 다른 표현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아기가 울더라도 절대 아기를 흔들거나 때리면 안됩니다.  아이를 즐겁게 돌보는 원칙을 가지고 아이를 훈육하고 육아하는데 도움이되는 올바른 훈육방법 을 소개드립니다.  ◆ 아이를 훈육할 때 지켜야 할 5가지 1. 감정적으로 야단지지 않기 아이보다 더 큰 목소리로 훈육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아이가 말을 들을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감정적인 모습을 아이가 배울 수 있습니다. 2. 한 가지 잘못만 훈육하기 오늘 잘못한 행동 하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과거의 일들까지 들춰내어 자녀를 '나쁜 짓만 하는 아이'로 만들지 않도록 합니다. 3. 비교해서 꾸짖지 않기 형제, 자매와 비교하며 꾸짖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비교는 형제간 질투를 불러 일으켜 서로 미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4. 자초지종을 먼저 듣기 아이의 잘못에 곧바로 야단을 치기보다는 반드시 자초지종을 먼저 들은 후 잘못한 만큼의 정당한 훈육을 해야 합니다. 5. 혼나는 이유를 알게 하기 "경찰 아저씨가 잡으러 온다.". "할아버지가 이놈 하신다." 등 아이가 무서워할 만한 사람을 거 론하는 방법은 좋지 않습니다. 이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아이가 수긍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육하하시는 육아맘, 육아아빠님들 동의하시나요? 더 좋은 방법들은 댓글로 적어주시면 업데이트 및 보완 하겠습니다. 그외의 육아팁은 아

유아, 아이게게 약을 잘 먹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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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어린이. 아이들에게 약먹이는 것은 부모도 아이에게도 힘든일일 수 있습니다. 먹이면서 지치기도 하고 아이도 먹기 싫어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약의 종류에 따른 투약 방법과 아이게게 약을 잘 먹이는 방법 을 소개드리려고 합니다.  약의 종류에 따른 투약방법 물약 - 눈금이 있는 숟가락에 부어 입안에 바로 넣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 단, 코를 잡고 먹이거나 눕힌 상태 또는 상체를 뒤로 젖힌 상태로 먹이면 기관지염이나 폐렴을 유발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가루약 - 맹물에 타서 먹은 후 한 번 더 물을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 단, 혀 안쪽은 쓴 맛을 가장 잘 느끼는 부분이므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 숫가락으로 먹이기 힘든경우 바늘을 제거한 주사기로 먹이는 것도 좋습니다.  좌약 - 아이가 자는 시간을 이용하여 정확한 위치에 넣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한쪽 다리를 들어 항문이 잘 보이게 한 다음 넣는 것이 좋습니다. - 넣은 후에는 아이의 사타구니와 엉덩이를 부드럽게 눌러줘 좌약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알약 - 아이에게 알약을 일부러 먹이려다가 목에 걸릴 수도 있어 스스로 삼킬 수 있을 때까지 굳이 알약을 먹일 필요는 없습 니다. - 전문의의 진료와 상담을 통해 가루약이나 물약으로 처방받는 것이 좋습니다. 연고 - 연고를 발라야하는 상처는 반드시 깨끗하게 닦아야 합니다. - 거즈나 소독 솜 등을 이용해 이물질을 닦아낸 다음 면봉 등으로 얇게 펴바릅니다. - 단, 신생아나 유아들의 피부는 약 성분 흡수가 잘 되면서도 민감하므로 사용 횟수를 임의로 늘리거나 지나치게 많이 발라서는 안 됩니다. - 진물이 흐르는 상처는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유아, 아이에게 약 잘먹이는 방법은 아래를 참고해 주세요  아이에게 약 잘 먹이는 방법 ✓ 가루약은 완전하게 개어 먹입니다. - 제대로 풀리지 않은 가루가 폐로 넘어가 기침이 나거나 심하면 토할 수 있습니다. ✓ 맛있는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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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폭풍작전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Desert Storm) '이라는 작전명 아래 이라크 바그다드 공습이 시작됐다. 걸프전의 발발이었다. 이 전쟁은 이라크가 석유 과잉공급과 관련해 갈등을 빚어오던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 점령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은 유엔안보리를 통해 이라크를 침략자로 규정하며 쿠웨이트로부터 즉각 철수할것을 촉구하였고, 1월 15일까지 철군하지 않을 경우 무력을 사용할것임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를 거부하였고, 철수기한 이틀뒤, 공습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은 최첨단 무기들을 대거 동원하여 군사 강국이던 이라크를 완전히 압도 했다. 6주간 지속된 이 작전에서 다국적군은 1천여 시간의 공중폭격과 이후 불과 1백시간의 지상작전을 통해 이라크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라크 공화국수비대는 42개 사단 중 무려 41개 사단이 궤멸 되었으며 민간인 피해자를 포함하여 최대 15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 이에 반해 다국제군의 피해는 126명에 불과했다. 세부사항은 아래내용을 더 참고해 주세요 걸프전은 이전까지 치러진 전쟁의 양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가히 전쟁의 개념을 바꿀만한 현대전의 정접에 선 전쟁이었다. 스텔스기를 비롯한 각종 하이테크 무기들은 가공할 만한 정밀타격 능력을 보여주었다. 놀라운 것은 무기시스템 뿐만이 아니었다. 지상군의 바그다드 진격시에는 '가용부대를 축차 투입하지 말라', '공격 축선은 최소화 하라'는 등 작전의 불문율을 깨뜨린 창의적인 계획들이 실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전장의 모습들이 실시간 중계되며 전 세계인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전해주었다.  베트남 전쟁 이후 15년간 미국의 깊은 반성과 연구가 이뤄낸 전쟁수행방식의 혁신 이었다. 전쟁의 승리는 대적 필승의 정신력과 함께 기술적, 전략·전술적 우위를 점한 측이 쟁취하게 된다. 현대전을 비롯하여 미래 전

1951년 1월 15일 빨간마후라의 배경 승호리철교 폭파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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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호리 철교 폭파작전 1951년 1월 15일 은 대한민국 공군이 6·25전쟁 당시 적의 주 보급로였던 승호리철교 폭파작전을 완수한 날 이다. 실제 '빨간 마후라'라는 영화는 승호리 전투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많이 알려져 있다. 1950년 12월 38도선 인근에서 남북 간의 전선이 고착된 가운데, 유엔군 지도부는 휴전회담의 성과를 진전시키기 위해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던 공군을 통해 전황 타개 에 나섰다.  미 공군은 적의 주 보급로였던 승호리철교의 전략적 가치를 파악하고 철교 폭파 작전을 감행 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은 폭파된 철교의 200m 하류 지점에 새로운 철교를 가설한 후 더욱 밀집된 대공포화망을 구축하고 다리를 보호하였다. 미 공군은 재가설된 두 번째 철교를 폭파하기 위해 공격을 집중하였으나, 북한군의 대공포화를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때 대한민국 공군에 그 임무가 주어졌고, 우리 공군은 작전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적의 대공포화의 위협을 감수하고 '4,000ft 고도에서 강하하여 1,500ft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저고도 공격방법'을 감행 하기로 결심했다. 기존 8,000ft 고도에서 강하하여 3,000ft 고도에서 폭탄을 투하하는 전술에 비해 무모할 정도로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1월 15일 대한민국 공군 6명의 조종사들은 결전을 각오하고 출격해 빗발치는 적의 공격을 뚫고 두 번째 승호리철교를 완전히 폭파시켰다. 경험 많은 미 공군조차 성공하지 못했던 임무를 우리 군이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 공군의 명예를 걸고 기필코 성공해야겠다는 전투 조종사들의 구국일념에 기인 한 것이었다. 단독 출격한 지 3개월만에 거둔 값진 전과는 선배 전우들의 남다른 노력과 용기를 함께 증명해 주었다.

1959년 1월 14일 북한 노동적위군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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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농적위군 1959년 1월 14일 북한 로동적위대가 창설 되었다. 노동적위대는  북한 최초의 민간군사 조직 으로 북한은 6.25전쟁에 참여했던 중공군이 1958년부터 철수함에 따라 병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중공의 민병조직을 참고하여 노동자, 농민, 제대군인, 학생 등 약 50만 명으로 창설했다. 1962년에는 전인민무장화 정책에 따라 18~45세의 남자와 18~35세의 미혼여성까지 편입 시켰으며, 1971년에는 로동적위대의 해당 연령을 50세로 연장하고, 17~60세의 남자와 미혼여성 가운데 조선인민군과 교도대에 편입되지 않은 모든 주민을 포함시켜 규모를 확대 했다. 이후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본격적으로 군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2010년 당 창건 65주년 열병식에서는 ‘노농적위군'으로 명칭을 변경 했다 . 노농적위군은 지역방위와 전투예비대 임무 를 수행하며 군복과 AK소총을 지급 받고 연간 500시간의 교육 훈련을 실시한다.  북한은 2019년 동계 훈련시 예년과 같은 시범 위주의 훈련에서 벗어나 실전을 가정한 전투훈련과 평가 를 실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노농적위군을 비롯하여 교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 거의 모든 사회조직원을 규합하여 세계 1위 규모의 예비전력을 확보 하고 이의 정예화도 꾀하고 있다. 대한민국 예비군은 북한이 1.21사태를 일으켜 남북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던 1968년 4월 1일 창설되어 오늘에이르고 있다.  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예비군의 정신은 국가와 지역 사회를 위한 희생과 헌신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병역자원 감소로 인해 예비전력의 수 또한 축소될 수밖에 없는 현실과 여건을 감안해 볼때, '일당백'의 능력을 갖춘 예비전력 정예화 에 더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 군인 육군, 해군, 공군의 군번 1번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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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육해공군의 군번 1번은 누구 일까요?  한번쯤 궁금해지는데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형근 대장 / 손원일 제독 / 김정렬 대장  2002년 1월 13일, 한국의 군번 1번 이형근 대장이 별세 했다. 창군초기인 1946년 우리 군의 모체가 된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자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누가 군번 1번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은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국방경비대를 관리하고 있던 미 군정청은 이력서 접수 순서와 경력 등을 고려하여 이형근 대위에게 군번 1번 을 부여했다. 이형근 대위는 이후 국방경비대 총사령관, 2사단장, 3군단장, 육군 참모총장 등을 역임하며 조국수호와 전후 재건에 크게 기여했다.  해군의 군번 1번은 손원일 제독 이 부여받았다. 손원일 제독은 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우리 바다는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소신으로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을 창설했으며, 이후 해군사관학교 초대 교장과 해군총사령관을 역임했다.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 도입을 비롯해 해군의 기틀을 다지는데도 큰 공헌을 했다.  공군 군번 1번의 기록은 김정렬 공군 대장 이 가지고 있다. 광복 이후 한국군을 조직하는데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49년 육군 항공사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어 공군창설을 주창했다. 1949년 10월 공군이 창설되자 초대 공군참모총장이 되어 항공전력을 증강하고 승호리 철교폭파작전을 성공시키는 등 대한민국 공군의 역할과 위상을 확고히 했다. 모든 것이 열악하고 부족했던 시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척자의 정신으로 강군의 시금석을 쌓아 올리신 대한민국의 군번 1번을 소개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