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군인월급 및 군인 월급 바뀌는 내용(인상안 : 당직수당, 활동비, 수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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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의 월급이 또한번 급격하게 오를 예정입니다. 2023년에도 군인월급이 급하게 향상될 예정입니다. 이제 막 입대하는 분들에게는 한줄기 희망이기고 하고 일부는 군대가아닌 캠프라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2023년도에는 병장 100만원, 2024년은 150만원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세히 소개드리겠습니다.  기존 2022년까지의 군인 월급 변천사는 이전글(링크클릭)을 참고 하시면 좋습니다.  2023년 군인월급 인상안이 예정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병의 월급이 51만원에서 75만원으로, 일병의 월급은 55만원에서 86만원으로, 상병의 월급은 61만원에서 90만원으로, 병장의 월급은 67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오를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너무 과한거 아니냐 라는 의견도 있지만, 아직도 너무 적다, 최저임금도 안된다 라는 이야기도 많은게 사실입니다.    위의 사진이 2023년에 실제 오른 군인 병사 급여인데요 이병은 60만원 병장은 100만원 받는게 결정되었습니다. 실로 파격적인 인상인거 같습니다. 25년까지는 점차 150만원까지 올린다고 합니다. 그외에도 2023년 군인월급 외에도 달라지는 사항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요 여러가지 처우개선이 좋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당직근무비가 상승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군인은 특성상 24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별한 수당이 없이 근무를 시행하다가 당직근무비가 신설 되었었는데 그게 평일 1만원, 휴일 2만원으로 전혀 현실성이 없었습니다. 다만 이번에 조금 향상되어서 조금이나마 처우개선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평일 : 1만원->3만원   -휴일 : 2만원->6만원    ※ 27년부터 8만원 인상 추진 중 두번째로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시간이 향상됩니다. 기존에 28시간만 지급되다가 한시적으로 22년에 45시간까지 확대 적용되고 있는데요. 23년에는 45시간으로

1923년 1월 22일, 의열단 단원 독립운동가 김상옥 선생 서거


독립운동가 김상옥 선생
1923년 1월 22일, 의열단 단원 김상옥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열흘 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를 결행한 후 선생은 용산에 있는 매부 고봉근의 집에 몸을 감추었으나 밀고로 인해 은신처가 발각되었고 1월 17일, 무장한 일본 순사 14명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이에 선생은 뛰어난 사격 솜씨와 대범함으로 이들의 추적을 따돌린 후 눈 덮인 남산을 맨발로 넘어 왕십리 인근 이혜수의 집으로 은거지를 옮겼다. 그러나 이마저 일본에 탐지되어 이번에는 4백여 명의 무장경찰이 은신처를 겹겹이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선생은 양손에 권총을 들고 인근 가옥 지붕을 넘나들며 일경과 3시간여의 치열한 접전을 벌여 수 명을 사살하고 다수에게 중상을 입혔지만 안타깝게도 총알이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김상옥 선생은 마지막 탄환이 든 권총을 머리에 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 순국하였다. 그의 나이 34세였다. 상하이를 떠나 면서 남겼다는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라는 그의 결의를 따랐던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 의거를 기사에 올리며 “오른손을 이미 못 쓰는 상태에서 죽는 순간까지 둘째 손가락을 방아쇠에 걸고 권총을 힘있게 잡고 있었다."라고 했다. 일본 경찰들은 자결한 김 의사가 혹시 살아 있을까 두려워 감히 다가가지 못했고 김 의사의 어머니를 보내 생사를 확인하게 했다. 가족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할 때 그의 몸에 11발의 총상이 남아있었다고 하니 10발의 총알을 맞으면서도 수백의 일경에 맞서 세시간을 버틴 김상옥 의사를 초인으로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의 강한 정신력과 결기 넘치는 의거는 우리 민족의 저항정신을 되살렸고 이후 펼쳐지는 항일 투쟁의 발판이 되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 '암살'의 등장인물 '하와이 피스톨'과 영화 '밀정'에서 '김장옥'의 모티브가 되었던 선생의 신념과 기개는 오늘날까지도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